대입시험 수석자 명단(1969년 이후)

대한민국 대입시험 수석자 명단

대입시험

소개

오늘은 대입시험의 역사와 함께 각 대입시험별 수석자 명단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입시험은 시대와 함께 변화해 왔는데요, 그 변천사를 알아보면서 현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46년부터 1953년까지는 각 대학이 독자적으로 시험을 실시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별 단독시험제가 운영되었습니다. 그 후 1954년에는 대학입학연합고사가 병행되어, 이를 통과한 학생만 대학별 고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시 대학별 단독시험제가 시행되어 1961년까지 이어졌고, 1962년부터 1963년까지는 대학입학자격국가고사제를 실시하여 이를 통과한 학생만 대학별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69학년도부터 1981학년도까지는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두었고, 이를 통과한 학생만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82학년도부터 1993학년도까지는 학력고사와 대학별 고사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였습니다. 학력고사를 먼저 치른 후 그 점수를 기준으로 대학 지원을 했고, 이를 “선지원 후시험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1994학년도부터 현재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었습니다. 이는 “선시험 후지원 제도”로, 먼저 시험을 치른 후 그 점수를 바탕으로 원하는 대학을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학력고사를 폐지하고 논술고사 또는 면접고사를 치르고 이를 점수화하여 입시에 반영하며, 본고사를 금지하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시행된 것입니다.

대입시험의 역사를 살펴보니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시험 방식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럼, 각 대입시험별 수석자(만점자) 명단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비고사 수석자 명단대입시험 예비고사

학년도계열성별만점점수이름지역출신 고등학교진학 대학교전공근황비고
1969360311이윤섭서울경기고등학교서울대화학과한국과학기술원 교수, 포스텍 석학교수공동 수석
1969360311최왕욱서울경기고등학교서울대전자공학과Hantronix, Inc. 대표공동 수석
1970자연계300274임지순서울경기고등학교서울대물리학과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부 교수
1971자연계300274오세정서울경기고등학교서울대물리학과기초과학연구원장(서울대 교수)
1972자연계300273한태숙서울경기고등학교서울대전자공학과카이스트 전자공학과 교수
1973인문계330297허익렬서울경기고등학교서울대법대김앤장 변호사
1974인문계350325오내원전남광주제일고등학교서울대경제학과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비서울고 최초 수석
1975인문계312340송기호대전대전고등학교서울대국사학과서울대학교 교수
1976인문계310340임희근서울경기여자고등학교서울대불어불문학과출판기획번역 네트워크 '사이에' 대표이사최초 여자 수석
1977자연계340322신상훈서울보성고등학교서울대의대
1978인문계340316박석원서울서울고등학교서울대경제학과LG전자 부사장, (주)테크로스 대표이사
1979인문계340324김용재대전대전고등학교서울대신문학과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1980인문계340334김기영부산해동고등학교서울대법학과김앤장 변호사
1981인문계340330오관석부산부산진고등학교서울대법학과엘프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1969년 부터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 형태로 입시가 진행되었습니다. 도입 초기에 예비고사는 합격, 불합격을 판단하는 의미만 있었지만, 1974년부터 예비고사와 본고사 점수를 합산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로 인해 예비고사의 변별력이 상승하며, 70년대 후반에는 본고사보다 예비고사가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예비고사가 도입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립대학의 입시 부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대학별고사 체제에서는 각 대학이 입시를 전적으로 관리하였고, 이로 인해 무학력자가 합격하는 등의 입시 부정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대학 입시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 바로 예비고사였습니다.

예비고사는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을 미리 걸러내어 무자격자의 대학 합격을 막는 역할을 하였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대학 입시 부정을 근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예비고사라는 전국 단위의 시험이 도입되면서 지방 학생들에게도 명문대 입시의 길이 넓어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0년에는 모든 학원 및 과외가 금지되고 공교육의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도 금지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81학년도부터는 예비고사가 학력고사로 명칭이 변경되어 시행되게 됩니다.

학력고사 수석자 명단

대입시험 학력고사
[원희룡 장관, MBC 뉴스 학력고사 수석 인터뷰 모습]
학년도계열성별점수
(340만점)
이름지역출신 고등학교진학 대학교전공근황비고
1982인문계332원희룡제주제주제일고등학교서울대법학과국회의원, 제주지사, 
제7대 국토교통부장관
사법시험 수석 합격
1983인문계339홍승면서울고려고등학교서울대법학과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수석졸업
1984자연계332송병호경북김천고등학교서울대의예과강남 미래이비인후과의원 원장동생이 배우 송윤아
1984인문계332장순욱대구영신고등학교서울대법학과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법무법인 LKB 변호사
부모님 모두 교사
1984인문계332황덕순서울경성고등학교서울대경제학과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편모슬하
1985자연계336이미령서울미림여자고등학교서울대물리학과휴스턴 대학교 교수여자 수석
1986인문계332오석태서울숭실고등학교서울대경제학과한국SG증권 이코노미스트하버드대 경제학 석사
1986자연계332이준걸서울경성고등학교서울대물리학과홍익대학교 교수미국 텍사스대 박사
1987자연계332김동균서울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서울대물리학과부모님 모두 공무원
1987자연계332김영용부산동래고등학교서울대전자공학과연세대학교 교수미국 텍사스대 박사
1988자연계331이일완서울서초고등학교서울대전자공학과GCT Semiconductor 재직고등학교 입학 이후 줄곧 수석
1988자연계331정성태부산충렬고등학교서울대물리학과삼성전자 재직편모슬하
1989자연계325이종진서울대신고등학교서울대화학공학과S-OIL 재직수석 소감:
'...봉투 붙이느라 투박해진 부모님 손에 비하면
수석합격은 아무것도 아니다…'
1990인문계333양신호대구대구고등학교서울대경제학과ING 수석운용역주위에서 법대를 권유했으나
시험에 대한 부담감으로 경제학과 지원
1991자연계325한확목포목포덕인고등학교서울대컴퓨터공학과Ayla Networks 재직16세 최연소 수석
1992자연계336이학호양정고등학교서울대물리학과하버드 대학교 메사추세츠병원 교수아이큐 156, 동생 2명도 전교 1등
1993인문계339민세훈서울가락고등학교서울대법학과딜로이트 컨설팅 파트너컨설턴트국어에서 한문제를 틀려 아쉽게 만점을 놓침

1982학년도부터 1993학년도까지 시행된 학력고사는 인문과 자연계, 즉 문과와 이과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던 시험으로, 필기 시험 320점과 체력장 20점을 합하여 총 340점 만점의 시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선 시험 후 지원 방식으로 운영되어, 먼저 학력고사를 보고 그 점수를 바탕으로 대학을 지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1988학년도부터는 선 지원 후 시험 방식으로 변경되었는데요, 이 방식은 먼저 지망 대학을 지원하고 시험 결과에 따라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의 모집군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져 있어 한 학교에 한번만 지원이 가능했습니다. 전기에 모집하는 학교가 많았으며, 일부 학교는 전기와 후기에 걸쳐 분할 모집하였습니다. 학력고사는 선 지원 후 시험 시절에는 대입 지원이 먼저이고 시험과 채점이 대학에서 진행되다 보니 그에 따라 시험도 전기와 후기로 두 번 시행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후기 시험의 난이도가 전기 시험보다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학력고사 시험 당일에는 수험생과 그 학부모들, 지원하는 대학의 재학생들, 종교인들, 심지어 잡상인들까지 대학 앞에 모여 합격을 기원하며 한바탕 북새통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수능으로 변경된 이후에는 수능 당일 시험장에 사람들이 모이기는 하지만 학력고사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시험 후 다음날에는 면접과 신체검사가 이루어졌는데, 면접 점수는 동점자 처리에만 사용되어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학력고사는 5공화국이 시작되면서 전두환의 사회개혁작업의 하나로 실시된 과외 금지와 함께 도입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대학별 본고사를 금지하고 예비고사 성적만을 반영하는 이른바 7.30 조치가 발표되었는데, 이로 인해 학력고사는 예비고사의 과목별 배점 체계를 그대로 가져왔고, 처음으로 고교 내신 성적이 대학 입시에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수석자 명단

대입시험 수능 수석
[출처: 온라인커뮤니티]
학년도만점
(원점수)
점수이름지역출신 고등학교진학 대학교전공근황비고
1994 1차200194.8배호필대구성광고서울대전기·전자·제어계측공학과군스탠퍼드대 박사. 애플 재직
1994 2차200191윤건수서울서울과학고포항공대물리학과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 박사, 포스텍 교수
1995200194정성택부산부산과학고서울대전기·전자·제어계측공학과군모보탭 총괄사장
1996200188.6이정원서울서울과학고서울대전기공학부LG전자 재직
1997400373.3서준호제주대기고서울대물리학과한국기계연구원 연구원문이과 불수능
1998400398.5한상형서울서울과학고서울대산업공학과부산지검 검사
1999400400오승은서울한성과학고서울대물리학과하버드대 의대 연구원최초 국가대입시험 만점
2000400400박혜진서울대원외고서울대법학과김앤장 변호사수능 만점
2001400만점자 66명(만점자가 서울대 불합격,
서울대 57명, 경희대 한의예과 3명, 고려대 1명, 성균관대 1명, 경찰대 1명, 해군사관학교 1명 총 64명 합격, 2명 미확인
총 응시 인원은 850,305명으로 총 응시 인원이 80만 명을 넘는 마지막 수능)
인문계 42명, 자연계 24명), 물수능!
2002400394박기범대구덕원고서울대의예과문과 불수능
2003400394.5윤재희경기 성남서현고서울대경영학과삼성전자 재직
2004400393채희동충북 청주청석고연세대치의예과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재학 중 재응시
2005500만점자 20명전면 선택형 수능 시행, 제2외국어에 아랍어/한문 추가,
대규모 부정행위가 적발돼 이후 '필적확인란' 문구 도입
2006500499박지원전주상산고서울대법학과변호사
2007500499조희진서울한가람고서울대법학과원점수 기준
2008500수능 등급제로 수석인원 확인 불가(전 영역 1등급을 받은 수험생이 전체 수험생의 0.11%인 644명으로 추정)역대 최악의 수능 중 하나로 손꼽힘
2009500500박창희서울환일고서울대의예과10년만의 만점자
2010500498이준원서울한영외고서울대사회과학대학재수생, 원점수 기준
2011500494오슬기창원창신고서울대경영학과재수생, 이과 불수능, 2011년 까지 원점수 기준
2012500만점자 30명인문계 27명, 자연계 3명
2013500만점자 13명인문계 12명, 자연계 1명, 전영역 만점=국수영+탐구2개
2014500만점자 33명인문계 32명, 자연계 1명
2015500만점자 29명인문계 8명, 자연계 21명
2016500만점자 16명인문계 9명, 자연계 7명
2017500만점자 3명인문계2명, 자연계1명
2018500만점자 15명재학생 7명, 졸업생 7명, 검정고시 1명
2019500만점자 9명인문계3명, 자연계6명
2020500만점자 15명재학생 13명, 졸업생 2명, 인문계 11명, 자연계 4명
2021500만점자 6명재학생 3명, 졸업생 3명, 인문계3명, 자연계3명
2022500김선우경기 화성동탄국제고등학교서울대경영학과서울대 재학 중고려대 반수생, 역대급 불수능
2023500만점자 3명재학생 2명, 졸업생 1명, 자연계3명
2024500유리아경기 용인용인한국외국어대 부설 고등학교물리학’ or ‘화학’ 미응시로 서울대 의예과 지원 불가

출처: 교육부(우리나라 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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