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3대 대첩(大捷) 살수대첩

3대 대첩(大捷)의 첫번째 살수대첩

소개

살수대첩
[살수대첩 민족기록화: 박각순. 1975년 작]

한국사의 빛나는 순간들, 우리나라 3대 대첩에 대해 소개하려 합니다.

대첩(大捷)은 전투에서 아군이 적을 크게 이겼을 때 쓰는 용어로, ‘전투 지역명 + 대첩’의 형태로 명명합니다. 대첩은 크게 이겼다는 의미에서 중요성을 강조하는 단어이며, 대전(大戰)과는 규모의 차이로 구분됩니다.

우리나라의 대첩은 외세와의 전투에 한정되어 명명되었습니다. 삼국이나 후삼국 간의 전투나 내전 등에서는 아무리 크게 이겨도 ‘대첩’이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습니다. 이는 대첩의 상대, 즉 패배한 측이 한국사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나라 3대첩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 전투를 일컫는데, 이는 외세와의 전투에서 우리나라의 실력과 인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을지문덕(살수대첩)이나 강감찬(귀주대첩), 이순신 장군(한산도 대첩) 처럼 외적을 막아낸 대첩을 이끈 인물들은 그 능력과 뛰어난 지휘력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의 3대 대첩은 우리나라의 강인한 정신과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들의 용감한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더욱 밝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살수대첩의 전개

살수대첩 요약

전쟁제2차 여수전쟁
일자612년 7월(음력)
장소살수(薩水, 오늘날 청천강)
교전국고구려수나라
결과고구려 수나라
주요 인물을지문덕우중문 (대장군)
우문술
조효재
위문승
장근
형원항
설세웅
왕인공
신세웅(전사)
병력약 10,000~30,000명약 305,000명
피해기록없음원정군 몰살
사상자 : 302,300명
(약 2,700여명 생환)

배경
제2차 여수 전쟁이 발발한 612년, 수나라의 양제는 1,133,8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고구려의 요동성과 여러 성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피해가 누적되자, 수군과 육군으로 편성된 별동대를 조직하고 평양성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진행
별동대는 출발 당시 100일치 식량과 다양한 군수품을 가져갔지만, 병사들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행군 도중 버리거나 땅에 묻어 목적지에 다다랐을때에는 식량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수는 수나라 군영에 ‘수나라가 군대를 물리면, 자신이 왕과 함께 항복하겠다.’ 거짓으로 항복을 하여 수나라 진 중에 직접 찾아가 그 허실을 보았습니다.

이때,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대장군 우중문에게 보낸 편지가 전해 집니다.

살수대첩
[1908년 초등대한역사에 실린 을지문덕 영정]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

神策究天文 신책구천문 –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妙算窮地理 묘산궁지리 –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戰勝功旣高 전승공기고 – 전쟁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 지족원운지 – 만족함을 알고 그만 두기를 바라노라

이에 수나라 장수 우중문이 병력은 이미 지쳤고, 평양성은 견고하여 함락시키기가 어려움을 직감하고 고구려의 거짓 항복을 명분으로 회군을 시작했습니다.

결과

마침내 수나라군이 살수에 이르러 강을 반 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뒤에서 수나라군을 공격했고 수나라군의 제8군 지휘관 신세웅이 전사하는 등 군대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장수와 병사들이 달아나기 바빴습니다. 수나라 장수 왕인공이 최후의 부대가 되어 가까스로 고구려군을 막아내 대장군 우중문이 겨우 살아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평양 밖 포구에 주둔하고 있던 수나라 수군 내호아는 살수대첩의 소식을 듣고 퇴각할 수 밖에 없었었습니다.

살수대첩은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났습니다. 병력 305,000명 중에서 겨우 2,700여명만이 돌아가게 되었고, 고구려에게 큰 자신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수나라는 이 패배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정벌을 포기하지 않고, 3차, 4차 고구려 침공을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수나라는 내부의 민심 이반과 4차례에 걸친 고구려 침공 실패로 인한 국력 저하가 심각해져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통일제국인 수나라는 결국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수나라의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겪은 여러 위기들이 수나라의 존폐를 결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수대첩은 고구려의 기상과 을지문덕 장수의 뛰어난 전략으로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우뚝선 고구려가 대륙 세력으로 부터 한반도를 지켜낸 우리민족의 방파제 역할을 했던 전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3대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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